// 곰
bear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건 아주 어릴 때였다. 아마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.
bear = 곰.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.
몇 년 뒤, 중학생이 된 나는 문장 속에서 bear를 또 만났다.
I can't bear it. 사전을 펼쳤더니 견디다, 참다, 낳다, 운반하다 — 뜻이 줄줄이 나왔다.
이 곰은 내가 알던 곰이 아니었다.
// 두 개의 뿌리
이 bear가 사실은 homonym — 같은 철자, 같은 발음이지만 완전히 다른 두 단어라는 걸 알기까지는, 꽤 오래 걸렸다.
대학에서 영어학을 전공하고, 미국에도 다녀오고, 글로벌 회사에 들어가서 매일 아침 영어로 메일을 쓰고 영어로 미팅을 하는 생활을 3년쯤 했다. 그 사이에 bear는 그냥 아는 단어가 됐다. 곰도 알고, 견디다도 알고, 문맥에 따라 골라 쓸 줄도 알았다. 그런데 왜 하나의 철자가 이렇게 다른 뜻을 품고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.
어느 날 etymonline을 뒤지다가 bear를 다시 만났다.
하나는 인도유럽어 *bher- — "나르다, 옮기다." 여기서 bear (견디다), bear (낳다), 심지어 birth까지 갈라져 나왔다. 짐을 등에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이미지.
다른 하나도 *bher- — 그런데 이쪽은 완전히 다른 뿌리다. "밝은, 갈색의." 곰은 "갈색 녀석"이라는 뜻이었다. 진짜 이름을 부르면 숲에서 불려올까 봐 돌려 말한 거라는 설이 있다. 볼드모트의 원조가 곰이었던 셈이다.
내가 하나의 단어라고 생각했던 bear는 애초에 두 단어였다. 견디다와 곰은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아니라, 우연히 같은 옷을 입은 남남이었다.
어원을 읽는 건 의식적인 행위였지만, 그게 이렇게 와닿은 건 그 전에 수년간 영어 안에서 부딪히며 쌓인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.
// To my own words
처음 외국어를 배울 때 모국어에서 뜻을 빌려오는 건 경제적이다. get은 얻다, run은 달리다.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.
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영어 → 한국어 → 이해의 순서가 병목처럼 느껴졌다.
그래서 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읽고 들었다. 영화, 책, Reddit — 뭐든 좋았다. 처음엔 고통스러웠다. 모르는 단어가 매 문장마다 나오고, 속도가 안 나고, 재미가 없었다.
그런데 어느 순간 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— 그냥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.
자막 없이도 웃고 있었고, 사전 없이도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.
// Old habits die hard
요즘 Dune을 읽고 있는데, caid, bashar, Sardaukar — 모르는 단어가 끝이 없다. 그냥 문맥에 맡기면 된다는 걸 안다. 주변 문장들이 그 단어의 의미를 그려 줄 거니까. 그렇게 모국어를 습득했으니까.
그런데도 손이 사전으로 간다.
어쩌겠냐. 이게 내 출발점인걸. 모르는 영어 단어를 만나면 사전부터 펼치던 중학생이 커서 된 게 나니까. 그 습관이 없었으면 bear의 어원을 파볼 생각도 안 했을 거다.
다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.
그때는 한영사전을 펼쳤고, 지금은 영영사전을 펼친다.